글. 권소이 에디터 그림 그리는 시간을 제외하면, 동네를 산책하고, 강아지와 고양이를 돌보고,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는 게 전부다. 좋아하는 일이 업이 되었으니 일로, 취미로, 실컷 그림을 그린다. 그림책 더미도 만들고, 드로잉도 해보고, 썸네일도 만들고, 먹그림도 그리고. 그림책 작업과 아트웤을 자유롭게 오가며 본인의 시간표를 따라 하루를 지낸다. 열심으로 채워진 꾸준한 날들. 계획형 내향인 작가 이미나가 만드는 소소하고 충실한 작업이야기. 보통 오전 9시면 집 근처 작업실로 출근을 한다. 고양이 미미를 두 팔로 안아 들고 쓰다듬으며 행복한 20여 분을 보낸 뒤, 작업용 앞치마를 두르고 그림을 그린다. 12시엔 점심을 먹고, 눈구경하며 잠깐 산책을 다녀온 뒤 다시 의자에 앉아 또 그림을 그린다. 집중이 흐려지는 오후 서너 시즘엔 가까운 행궁동 단골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늦어도 다섯시 전엔 작업실로 돌아와 다시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6시엔 퇴근을 한다. 활동 반경이래야 작업실 근방 수원이 전부다. 직장인의 하루와 별반 다르지 않은 하루의 스케줄. 이미나 작가의 매일은 그렇게 채워져 있다.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이 다소 시대를 역행하는 세련되지 못한 삶의 방식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노력충’이라는 말로 비하되기도 하는 오늘날, 스스로의 만족과 성취감을 위해 진심과 열심의 보람된 시간을 선택했다. 작업을 한 날엔 다이어리에 한자 지을 작作을 써두는데 이 글자가 많이 있으면 작업하며 잘 살아가고 있구나 안심도 되고, 시간을 알차게 쓴 것 같아 마음도 편안하단다. 때마다 조금씩 다르다지만, 대충 보아도 꽤 많은 날들이 크고 작은 ‘작’자로 채워져 있다. 이름 뒤에 작가란 단어를 달았으니 이 정도는 살아야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그 시간 동안 머릿속으로 상상도 해보고 어떤 장면이 좋을지 고민도 하고, 작게도 그려보고 크게도 그려보고, 재료도 바꿔가며 나은 것을 찾아간다. 대신 하루 그림 목표량을 정해두는 것은 그만하기로 했다. 강박만 더해질뿐 좋은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신 별 생각 없이 그냥 그린다. 그림이 잘 될 때도 그리고, 그림이 안 될 때도 잠시 쉬었다 다시 그리고. 그렇게 흘러가는 매일에 색을 입힌다. 작업실 오며 본 동네 모습이 딱 작가님 그림책 [나의 동네] 같아 재밌었다. 어린시절 봤던 할아버지 동네같은 배경을 원했는데, 작업실 구하려 왔던 수원에서 그 답을 얻었다. 이 근방 골목을 다니며 낡은 주택도 스케치하고, 풍경도 담으며 준비했었으니 닮은 부분이 있을거다. 네 번째 그림책 [새의 모양]이 나왔던데. -이번 새 책은 느낌이 좀 다르더라. 원래 유화와 아크릴로 작업하는 편인데 이번엔 그 재료들로 그린 그림이 무겁게 느껴지더라. 조금 다르게 작업해 봐야지 싶어 수채화를 선택했다. 수채화 작업에 대한 기억이 그닥 좋지 않았어서 좀 두렵기도 했고, 수채화는 종이도 비싼편이라 망설이다 시도해봤는데 맑고 투명한 느낌이 가볍고, 보드랍고, 반짝이는 작은 새의 모습에는 더 잘 맞았던 것 같다. 붉은색에 노란빛이 더해진 색감도 그렇고. 너무 열심히 하는거 아닌가? 그림책 한 권 만들어 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19년 첫 책을 시작으로 벌써 네 번째 책이다. 게다가 아트웤 작업도 하고, 여러 전시 일정들도 있고 간간히 강연도 있는 걸로 아는데. 그림을 그리고 생각을 풀어내면서 힘을 얻는다. 안 그릴 때 오히려 예민하고, 까칠해지고. 어느 날, 몰입해서 그림을 그리다 화장실에 가서 내 얼굴을 봤는데, 꼭 부처님 얼굴처럼 편안해 보이더라. 그림 그릴 때 내가 제일 편안하구나 느껴졌다. 붓으로 확확 몰아치듯 그리는 느낌도 좋고, 그 후에 드는 나른한 기분도 좋다. 딱히 취미랄 것도 없는 편이라... 시간이 많다. 그런데 늘 열심히 한다는 건 오해다. 게으를 때는 한 없이 게으르다. 한 70% 정도의 열심으로 살고 있지 싶다. 하고 싶은 거 있지 않나? 얼마 전 만난 지인분이 취미가 뭐냐 묻는데 할 말이 없더라. 그 분은 자전거도 탄다고 하고 이것저것 취미로 하는게 많으시던데... 어? 나 이상한건가? 살짝 현타가 오더라. 그래서 생각해 본건데, 수영도 하고 싶고 여행도 가고싶다. 바닷가 돌아다니며 드로잉 채집도 하고 싶고, 사고픈 재료도 많은데... 유화 종이도 사고 싶고, 큰 그림 작업도 해보고 싶고... 아 결국 다시 작업이야기다. : 내가 이렇다. 취미로 도자기를 해볼까 싶어서 시작했다 그때도 결국 작업으로 이어졌다. 세라믹으로 호랑이, 여우, 레오파드도 만들고 치타, 사자, 부엉이도 만들고. 책 속 주인공도 그렇고 아트웤 작업도 그렇고 동물들과 다양한 식물이 주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대학 다닐 때까지만 해도 동식물을 그려본 적이 없다. 그림 스타일도 지금과 완전 다르고. [나의 동네] 그림책 작업을 하면서 오래된 동네 곳곳에 사는 동물들을 처음 그리게 됐고 그림 연습을 하면서 본, 그 형태와 무심한 듯한 눈매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관찰하는 시간이 늘어나게 됐고, 그렇게 시간을 들여 더 자세히 살펴보니 그 속에 무궁무진한 형상들이 숨어 있는 게 보이더라. 탐구하며 점점 더 좋아졌는데, 식물은 형태로서 매력적인 대상이고,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은 곁에서 치대며 사는 존재인데, 어떤 날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완전히 소통 가능한 대상처럼 느껴지고 또 어느 날은 절대로 얘네를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야생적 미지의 존재처럼 느껴지는 점이 재미있다. 내게는 그려도 그려도 계속 그림을 이어가게 해주는 귀한 소재이다. 그러고 보니 남동생도 수의사인데, 우리 가족에게 동물을 사랑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도 같다. 특히 애정이 가는 동물이 있나? 그렇진 않은데 이번 골든핸즈프렌즈 전시를 앞두고 작업을 할 때는 고양이 까미 생각이 많이 났다. 작업실에 있는 미미는 생각하는게 보이고 겁도 많은 아인데, 까미는 도대체가 알 수가 없는 아이였다. 강원도에서 풀어 키우던 고양이라 집 안팎을 자유롭게 다녔는데 사라져선 아무리 찾아도 없어 어디서 잘못됐나보다 체념하면 한 6개월 지나 불쑥 나타나기도 하고, 수원집으로 오고 나서도 3일 동안 사라졌다 돌아오기도 하고. 사고뭉치였는데 동시에 특이하고 신비로운 존재 그 자체였다. 죽고나선 한동안 안그렸는데 왜인지 까미 생각이 계속 나더라. 작품 설명을 좀 해준다면? 최근 들어 너무 비슷한 소재만 그리는게 아닌가 하는 고민이 있었다. 고여지는 게 아닐까 걱정도 되고. 아이덴티티와 정체됨 사이의 고민이랄까... 그런데 고민해봤자더라. 꽂힐 때 그리자 싶어서 좋아하는 것 더 그려보기로 했다. 조금 변화가 있다면 전엔 꾸덕꾸덕하게 올리고, 채우는, 가득 찼을 때의 느낌을 좋아했다면 요즘엔 덜어냈을 때의 느낌도 좋아졌다는거다. 사족을 없앤 본질의 형태가 지닌 단순함도 표현해 보고 싶다. 그 변화를 고스란히 볼 수 있는 게 사과 그림이다. 더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나? 큰 작품을 그려보고 싶다. 요즘은 안그런데 그림이 팔리기 시작한 초반에는 이 그림이 팔릴 것 같다, 안팔릴 것 같다에 사로잡힐 때가 있었다. 특히 큰그림은 재료는 많이 들고, 보관도 쉽지 않은데 판매도 소품에 비해 잘 되지 않으니까, 비용도 부담스럽고, 이것저것 따지다 못하곤 했다. 이번에 4미터 되는 긴 롤지에 그림을 그려 봤는데 큰 화폭에 담는 그림 이야기가 새롭고 재미있었다. 보관 때문이라면 천에 작업해봐도 좋을 것 같고... 고민 더 해보고 좋은 방법을 찾아 큰 작업을 진행해 보려한다. 다양한 활동으로 바쁜 요즘인데 마음은 어떤지.재료비는 계속 나가는데 일 년에 백 만원도 못 벌던 20대를 보냈다. 그 때를 부모님 덕으로 버티고 나서 그런지 최근 들어 나아진 모든 변화들이 신기하고 감사하다. 그림이 팔리는 것도 그렇고, 라이브 드로잉을 보러 와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도 그렇고. 내가 그린 그림이 네 권의 그림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는 것도 그렇고... 혼자 있는 것도 좋아하지만 사람만나 이야기하고, 좋아해 주시는 분들을 가까이 만나는 것도 필요하다 생각해서 노력 중에 있다. 책 홍보 하느라 행사도 해보고, 외부 라방도 해봤는데 부족하다 느껴지더라. 다음 번에는 더 잘 준비하고 내공 쌓아서 만나뵈어야지 생각하고 있다. 2022. 10 GH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