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소영 개인전마주하는 결 Facing the Grain 전시 일정: 2025년 10월 23(목) - 11월 1일(토), 오후 1-7시* 10월 26일 일요일은 전시를 쉽니다. -오늘도 천변을 따라 걷는다. 나무의 몸통, 잎사귀의 거칠함, 스치는 바람…매일 다른 온도와 습도를 통해 전해져 오는 감각들은 피부로 스며들어 우리가 지금 여기에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한다. 산과 물과 돌은 끝없이 변화하면서도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문다.올해 초, 함께한 지 11년 된 반려견 ‘사이’를 떠나보낸 뒤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은 더 이상 그 친구를 만질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눈빛을 주고받고, 숨소리와 향기를 공유하던 시간이 사라진 자리가 선명한 이별로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산책길에서 마주하는 바람과 물의 결, 식물의 부드러움, 흙의 부석거림 같은 것들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손끝에 닿는 듯한 그 촉감은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하고, 동시에 사라진 존재의 빈자리를 다른 방식으로 이어주었다.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며, 그 모든 감각이 서로 만나 만들어내는 ‘결’을 기억 속에 새겨 둔다. 그리고 그것을 화면 위에 옮기며 드러난 것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깊은 곳과 조응한다. 풍경 안에서 나를 찾으며, 우리는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는 진동을 느낀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대상을 바라보는 데서 나아가, 그 앞에 서 있을 때 온몸으로 감각되는 경험을 담아내려는 시도에서 출발했다.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질감을 통해 표면의 물질성과 내면의 깊이까지 탐구하고자 했다. 그동안 꾸준히 해 오던 생명성에 대한 ‘식물’ 시리즈와 표면과 이면이 만나는 장소로서의 새로운 ‘물_하천’ 시리즈를 선보인다. 전시 제목의 ‘결(Grain)’은 나무나 물, 살갗에 남는 무늬를 뜻하지만, 동시에 시간의 흐름과 보이지 않는 잔상까지 품고 있다. 이는 풍경을 외부의 대상으로 고정하지 않고, 그 안으로 들어가 하나가 되려는 태도를 드러낸다. 거친 바탕을 만들고, 그 위에 여러 겹의 물감층을 쌓으며 붓끝으로 화면을 일구어내는 과정은 풍경을 ‘만지고 읽는’ 또 하나의 체험이 된다.이는 그리는 행위를 넘어, 지금 여기에서 나 자신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진실과 허구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는 시대 속에서, 나를 이루는 ‘온전한 세계’는 무엇인지 질문하고 싶었다. 철학자 프랑수아 줄리앙이 말했듯, 풍경은 우리를 무심한 일상에서 벗어나게 하고, 지금-여기의 개별적 존재로 되돌려 놓는다.내게 풍경은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무언가를 마주한 순간의 흔적이며 심상이다. 그 흔적이 다른 이들의 기억과 감각을 만나 또 다른 결을 이루기를 바란다. 2025. 여름. 문산에서. 전소영- 이번 ‘물’시리즈는 표면과 이면이 교차하는 장소로서의 하천을 주목한다.하천은 곳곳에 흐르며 우리 일상에 가장 근접해 있는 크고 작은 물줄기이다. 끊임없이 흐르며, 길을 만들어 나아간다.그 흐름을 따라 가다 보면 수면 위로 반사되는 빛과 그림자와 더불어, 물 아래로 비치는 바닥의 깊이를 동시에 경험한다.드러난 것과 드러나지 않은것이 한 시선 안에서 맞닿는 순간이다.물이끼와 물 위를 떠다니는 부유물은 시간의 흔적처럼 표면에 남고, 하천의 바닥은 깊이와 투명함을 동시에 드러낸다.이 대비는 물의 이중성—반영하면서도 비추고 드러내는 성질—을 상기시킨다.또 물은 형태가 고정되지 않고 유동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경계가 불분명 해지는 지점이 오히려 새로운 인식이나 감각이 열리도록 다가왔다. 이전 작업에서는 하천을 풍경의 일부로 그려왔다면, 이번에는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한 시선으로 화면을 구성했다.또 부분적으로 거친 바탕을 만들어 매끈하고 거친 질감의 대비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시각적 효과를 의도했다. 내게 하천을 그린다는 것은 단순히 자연의 한 부분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순간과 지속, 표면과 이면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삶의 자리를 탐구하는 일이다.